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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희

  • 비오는 가을 산, 한라산
등산시 삼각봉 대피소와 헬리콥터 주차장, 하산시 모든 풍경
또랑 게스트하우스는 한라산 등산에 최적화되어 있는것 같다.
도미토리 숙소 시설부터 대여해주는 장비들과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 조식과 도시락
코로나가 유행했던시기에는 오히려 탐방로 예약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제주 한달살이 할때에는 날씨만 보고 백록담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탐방 예약을 해놓고 등산을 해야해서 불편함을 느꼈다.

비가와도 나는 간다
한라산에 오르는데 비가 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백록담을 눈으로 볼 수 없어도 가을 산을 오르고 싶었고
못봐도 상관없는 내가 갔었던 산이었으면 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게 있다면
비가오면 중간에 앉아서 쉴수가 없다
그렇다 한라산을 쉴틈없이 오르고 내려야 한다
내리는 비를 뚫고서 도착한 삼각봉대피소
왜 삼각봉 대피소인가 궁금했는데, 아주 직관적인 이름이었다
5천원짜리 라이딩 장갑이 비오는 한라산에서 빛을 바랬다
이번에 느낀건데, 한라산은 언제나 춥다?
7월에 와도 속눈썹에 이슬이 맺힐만큼 춥고
비오는 10월에는 엄청나게 춥다
한라산에서는 손수건이 보온용으로 필요하더라
날씨를 보아하니, 삼각봉 대피소에서 도시락을 먹지않으면 먹을 수 있는 곳이 없겠더라
내려갈때 먹을까 하다가, 대피소까지 오르는데 한번도 쉬질 않아서 쉴겸
가만히 쉬니까 오히려 더 추워져서 보온병을 깠다
물안개라 넘실넘실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삼각봉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장관이었다
대피소를 지나서부터는 완연한 가을 산의 모습이 가득했다
어딜가든 알로록 달로록 단풍이 들었다
대피소 전까지는 푸른 산에다가 산속의 풍경이었다면
대피소 이후에는 단풍 산에다가 산능선이 보이는 골짜기 풍경이다
산길을 지나서 거의 나무 데크길로 올라가면 된다
쾌적하게 나 있는 데크길을 따라 올라가면 되는데 진짜 경사가 들쭉날쭉이다
지리산에서도 아프지않았던 허리가 관음사탐방코스에서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쉬지도 못하고 비 맞아가면서 등산을 하는게 힘이 드는지, 급변하는 경사에 접히는 허리에 디스크에 무리가 가는지 이대로 내려갈까도 생각했다
오르는 내내 표정이 좋질 못했는지, 정상을 찍고 내려오시는 분들이
곧있으면 도착한다고, 힘내시라고 응원을 해주셨다
진짜 무념무상으로 오르는데, 내려오시는 분들 중 덜덜 떨면서 내려오시는 분들도 더러 있어서 의아해하기도 했다
오르는 내내 예상했다시피 정상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기념비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줄의 끝도 안보일 지경이었다

빠르게 기념사진을 포기하고 한치앞도 안보이는 미지의 세계에
 줄서있는 사람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해서 인증사진을 남기는데
그 찰나의 순간을 가만히 있었다고 그렇게나 춥더라

오를때는 땀내느라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던 건지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니까 너무나 추웠다

내려오는 길에는 비바람이 따갑다못해 시려서 잠시 비바람을 등지고 웅크려서 쉬었다가 내려와야 했다
너무 추워서 빠르게 하산을 하기 시작했는데, 관음사탐방로는 등산 할때보다 하산하는 길이 엄청나게 예뻤다
산이라는 절벽을 병풍으로 인테리어를 해 놓은 것 같았다
정상에서 중턱부근의 헬리콥터 주차장까지 절벽병풍과 산 능선이 진짜 장관이었다
삼각봉 대피소 이전의 대피소까지, 지금은 태풍에 쓸려 터밖에 안남은 옛날 대피소까지 하산하면서,
내가 몰라서 이런말을 하는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비바람으로 된 오로라를 봤다
장대같은 비가 흩날리는 커튼처럼 물결치는데 본적도 없는 오로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은 산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 만큼 산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
비가오면 어떤가, 비가 와도 좋다
왜 내가 하산하니까 비가 완전히 다 그친걸까
이왕이면 하루종일 비내려주지

아침일찍 꼭두새벽부터 한라산에 오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다면 백록담은 정오가 지나야 조금씩 날씨가 맑아지더라(?)
게스트하우스 셔틀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나마 빨리오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기위해 
눈앞에 보니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맥주에 파전으로 원기충전을 했다
진짜 내 등산이력 중 이렇게 맛있는 곳은 또 없었다
  • 반스신고 오르는 노을맛집 인왕산
부암동에서 정상부근의 뻥 뚤린 로프구간, 정상에서 경복궁역까지에서 보이는 남산 뷰
나는 산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부암동을 좋아한다.
마음 뭉클했던 환기미술관과 아름다운 석파정 미술관이 있기도 하고 어느 빙수집하고도
비교 불가능한 부암동 빙수집도 있고 여러 잡동사니가 있는 손때를 탄 잡화점에서 나의 취향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해서다.

여러 번 부암동을 다녀왔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인왕산 둘레길과 등산로가 부암동을 지나가고 있었던 거다.
언젠가는 인왕산을 올랐다 하산하는 길에 부암동 빙수를 먹는 코스를 생각해뒀는데 부산에서 온 딸랑방구랑 다녀오게 되었다.

서울까지 와서 한다는 게 비록 등산이지만 우리는 맑은 하늘을 가진 날 노을 시간에 맞춰서 산에 올랐다.
빙수도 먹어야 했고 노을도 봐야 했기에 우리는 버스로 부암동까지 올라
경복궁역으로 내려가는 하산을 하기로 정했다.

분명 마을 이정표를 따라 긴가민가 싶은 샛길 같은 산길에서 잠깐 멈칫하기도 하고 가파른 바윗길 30분 정도를 올라 메인 등산로에 합류할 수 있었다.
정상까지는 조금 더 가야 하지만 정말 땀나는 등산은 30분가량이면 끝이었다

 버스를 타고 온 거리가 있다 보니 땀이 날려고 하는 그 30분 사이에 인왕산에 다 올라버렸다.
인왕산 자락길보다도 힘이 들지 않는 등산 코스여서 조금 김새기도 했다.
그늘져 어두컴컴하고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등산로인지 아닐지도 모르는 샛길을 올라
메인 등산로에 올라 본 풍경은 이제 막 해가 기울어 노을이 지기 시작하고 맑은 하늘 덕에 홍제동과 홍은동 마을까지 깨끗하게 다 보였다.

그렇게 돌바위에 앉아서 풍경 구경을 하다 아직은 연한 하늘색인 하늘을 쳐다봤는데
따뜻한 초록색의 소나무에 달린 아기자기한 솔방울이 장난감처럼 매달려 있었다.
정상까지는 경사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산책하듯이 딸랑방구와 조잘 재잘 수다를 떨며 걷기도 하고
푸르른 소나무와 깎인 돌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험난한 산 능선이가 굽이굽이 이어진 북한산과 도봉산의 탁 트인 절경을 보며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를 한 번 더 찾은 것 같다.

높은 곳에 서서 아무것도 내 앞을 가로막지 않고 어디든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그림자 진 인왕산을 바라보면 산 능선이 소나무 사이 벙 뚫린 절벽 같은 곳을 지나는 등산객들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듬성듬성 심어진 나문가 했었는데 움직이는 걸 보니 사람이다 싶었고 저기가 등산로라는 걸 알았다.
저 밑에서 우리가 산을 오르는 그림자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풍경은 부암동에서 광화문으로 바뀌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경복궁을 카메라에 담았다.
솔잎과 궁궐을 따듯하게 느낄 수 있는 노을 필터까지 쓰니 가을 느낌이 물씬 났다.

단풍잎도 아니고 솔잎인데 가을이라 느끼는 이유는 아마 불어오는 시원 서늘한 바람과 내리쬐는 포근한 햇볕이 8팔을 차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을을 한참 지나 서울에 첫눈이 온 주말 밤, 지금과는 적당히 달라진 우리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놓는다.
인왕산의 정상은 예쁘지 않았다.
시야도 다 막혀있고 사람들이 복작복작해서 얼른 지나가고 싶었는데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다 후딱 사진을 찍고 자리를 옮겼다.
정상의 기념비 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훨씬 더 예뻤다.
특별한 데이트로 온 건지 아니면 산책 삼아 산을 오른 건지는 몰라도 충분히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정상을 지나 경복궁역 쪽으로 하산하는 길에 정상보다 풍경이 만족스러운 포토존이 나오는데
그냥 지나칠까 했다가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바위가 가팔라 엉덩이를 살짝 기대어 찍는 게 최선이었지만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 중 가장 훌륭한 배경을 가진 곳이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뒤이어 내려오던 한 가족분들도 줄을 서서 기다리셨는데
같이 찍을 사진 한 장을 부탁드렸다.

유쾌하신 아버님께서 한 장으론 부족하다 느끼셨는지 여러 장을 아주 친근하게 찍어주셨다.
봄에는 매화, 벚꽃, 개나리
여름엔 장미, 해바라기
가을엔 갈대와 코스모스
겨울엔 동백꽃과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성곽길을 따라 피어난 코스모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노을이 절정을 다해서 이제는 온통 진한 노란빛으로 색을 들였다.
중턱에 도착해 지금까지 내려온 길과 앞으로 내려가야 할 길을 바라봤는데 꽤 갈 길이 멀었다.

부암동으로 버스를 타고 올라오지 않고 경복궁역부터 걸어서 올라왔다면 꽤나 시간을 들여야 할 높이다.
비슷한 높이를 가진 아차산보다 인왕산이 더 험난한 산이라 생각된다.
노을이 넘어가고 어푸스름한 어둠이 깔렸다.
성곽에 조명이 들어오길 바라면서 천천히 걷다 해가 넘어가길 기다렸지만 은은한 빛이 남아 자락길까지 내려와서야 기대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운치 있는 자락길의 성곽 조명과 만발한 코스모스 밭을 끝으로 하산을 완료했다.
의외로 자락길이 잘 닦여 있어서 사직동이나 서촌에 놀러 왔을 때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을 것 같다.
  • 당일치기로 지리산 일출보기
당일치기로 지리산 일출!
남부터미널로 가는 8호선 오금역까지 택시를 타려 새벽부터 뛰었다.

부리나케 달려 도착한 중산리는 아주 암흑이었다.
딸랑방구가 지름길인 계단으로 가로질러 올라오면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했는데
그 계단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여기도 암흑 저기도 암흑이라 가로등이 비치는 도로를 따라 꼬불꼬불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중산리 주차장 →게스트하우스→탐방로 입구 길이 하나라 내가 도착할 즘 맞춰 등산 메이트 딸랑방구도 짐 꾸리기로 함)
사방으로 지리산이 첩첩산중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가로등이 없는 곳
어둠 속에 혼자 우두커니 있자니 무섭기도 했지만 이런 경험이 적어서인지 신기하기도 했다.
등산메이트가 이용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라면 먹을 때 필요한 뜨거운 물을 텀블러에 담고 미리 주문했던 도시락을 챙겨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사장님께서 탐방로 입구까지 태워다 준다고 하셨다.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는데 그래도 20분가량 올라가야 하니까 잠시만 기다리라며 차 키를 챙기셨다.

기분 좋게 사장님을 따라 주차돼있는 차 앞으로 따라갔는데 사장님이 멈칫하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셨다.
알고 보니 사장님 차를 다른 게스트분의 차량이 나가는 길목을 떡 하니 막고 있었다.
새벽녘에 차 빼달라고 게스트를 깨울 수 없어 미안하다 하셨고
우리는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괜찮다고 미안해하실 필요 없다고 말했다.
사장님 부부는 출발하는 우리를 끝까지 배웅해 주셨다.

탐방로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부실한 아침을 먹는데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걸으면서 먹자니 음식이 잘 먹히지 않았다.
딸랑방구가 준비해온 맛있는 후식도 미안하지만 퍽퍽하게 먹었다. ㅋㅋㅋ
통천길

입구에 도착하니 왠지 모르겠지만 조금 설레면서 떨렸다. 여길 오르려고 잠도 못 자면서 밤 버스를 타고 왔다.
자전거 라이딩할 때 쓰는 랜턴을 챙겼는데 지리산에서 내 랜턴에 제일 강력하게 밝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랜턴 불빛만 보고 무작정 오르기 시작했는데
각오한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돌산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말 무릎 높이의 울퉁불퉁한 가파른 돌바위를 좁은 시야로 오르는 건 정말로 힘들었다.
그러다 딸랑방구가 한 시간가량 왔나 싶을 시점에 갑자기 주저앉아서 청포도를 먹어야겠다며 가방을 풀었다.

뜬금없이 청포도? 이렇게 갑자기? 싶었는데 알고 봤더니 이 시점에 포기하고 내려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나한테 말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으니 청포도를 먹으면서 다시 힘낼 심산이었던 거다.

나는 이때부터 화장실이 급했다. 얼른 로터리대피소에 도착해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폴짝 뛸 만큼 급해 딸랑방구가 건네는 청포도를 도저히 받아먹을 수 없었다.
얼나마 올라왔지는 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체 멀리서도 밝게 빛나던 로터리대피소 불빛을 쫓아 드디어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이때쯤부터 슬슬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는데 시야가 밝아져서 인지 산행이 훨씬 쉬워졌다.
나도 지리산에 온다고 설레었는데 딸랑방구도 엄청 기대했는지 안 챙겨온 게 없었다.
물티슈와 티슈는 기본이었고 덕분에 같이 산타는 나는 불편함이 없었다.
주위에서 지리산에 간다고 하니 정말 조심하라면서 겁을 엄청 줬다.
안 그래도 아는 지인이 저번 주에 다녀왔는데 경사가 워낙 가파르고 높아서
허리에 무리가 많이 왔다고 했다.
허리디스크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로터리대피소까지만 가면 거진 다 간 건데 그 이후부터 정상까지 엄청 힘들다고 했는데 나는 입구부터 대피소까지 그 돌부리 암흑 길이 훨씬 힘들었다.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한다.
처음부터 정상에서 일출을 볼 기대 따위 하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지리산 간다고 난생처음 등산화를 샀다.

평상시 등산이라곤 동네 뒷동산이 전부였으니 최대한 갈 수 있는 만큼 오른 뒤 일출을 바라보기로 했다.
법계사를 지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야가 뻥 뚫렸다.

눈앞에 펼쳐진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물결치듯 구름이 일렁이는 광경에 발걸음을 잡혔다.
그렇게 같은 자리에서 일출을 준비했다.
운 좋게 일출을 눈에 담았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과는 다르게
산봉우리 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고요하고 웅장했다.
일출도 보고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출 전에는 그래도 산속에서 해가 떠오를까 조금은 쫓기듯 올랐는데
숙제를 모두 끝낸 것처럼 맘 편이 산을 올랐다.

이때부터 해도 뜨고 길도 편해서 쉬엄쉬엄 걸었더니 땀이 식으면서
갑작스레 추위가 몰려왔다.
덥다고 바람막이 지퍼를 내린건 정말 멍청한 행동이다.
우리는 또다시 아름다운 일출에 오두방정을 떨고 있으니
지나가는 등산객분이 마당바위에서 보는 일출도 장관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아쉽게도 우리의 체력은 마당바위까지 버텨주질 못할 거란 걸 잘 안다.
정말로 마당바위에서도 일출은 계속되고 있었다.
프로등산객으로 보이는 어르신분들이 어린 학생들이 새벽부터 등산왔다고 대견?해하셨다.
내일모레면 나 계란한판인데 학생 소리를 들었다.
이제 정상까지 매끈한 나무 데크길로 오르면 된다. 데크길로 편하게 걸으면 되는데 어휴 체력이 다했는지 발이 천근만근이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오늘이 평일인지 주말인지 시간개념도 사라졌다. 백수생활을 끝으로 다시 출근한다는 걱정거리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걷게 된다.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기에 등산만 한 게 없는듯하다.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슬슬 천왕봉에서 인증샷을 찍어야 하니까 이때쯤 선크림도 바르도 입술에 생기도 불어넣었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 올라온 길을 뒤돌아봤는데 정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북한산이랑도 다르고 한라산하고도 달랐다. 새로운 세상에 내가 와있었다.

두둥
그다지 붐비지 않아 여유롭게 인증샷을 찍었다.

우리 뒤에 줄 서있던 부부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엄청 잘 찍어주시고 뒷면이 더 지리산 인증샷으로 핫하다는 정보도 주셨다.
그런데 해를 완전히 등지고 있어 역광이라 아쉬웠다.
정오를 넘겨 오후가 돼야 빛이 들 것 같았다.
정상에서 컵라면을 먹겠다고 주차장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보온병이 빛을 발휘했다.
정상에서 먹는 도시락과 컵라면은 진짜
11월 1일 가을 끝 무렵이라 그런지 정상에서 꽤 추웠다.
산을 오를 때는 땀나서 몰랐는데 멈춰 서서 땀이 식기 시작하니 굉장히 추웠다.

라면 붇고 남은 보온병 따뜻한 물로 조금 버텨봤는데 한 시간가량을 넘어가니 하산해야겠더라.
정오를 넘기니 정상에서 사진 찍으려고 늘어선 줄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헤맸다
하산하면서 등산화 끈이 풀린줄도 몰랐는데 올라오시던 등산객분이 안풀리게 끈 묶는법을 몇번이고 설명해주셨는데 난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아주머니께서 나보고 엄청 쎄그럽게
"학쌩!"
하시더니 무슨일인가 긴장하면서 다음말을 기다렸는데
등산할때는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신어한다고 걱정해주셨다.
쌔그러운 말투에 친절한 내용이라 당황스러웠는데 기분은 좋았다
해가 뜨고 난 후에야 지리산이 보였다.

일출을 목표로 온 지리산이었는데 정상이 다가 아니었다.
오를 때 캄캄해서 못 봤던 가을을 내려가면서 볼 수 있었다.
어둠속에서 지나왔던 망바위로 돌아왔는데도
아직시야는 주위 산능성이가 보이는높이다
아니 내가 이 거리를 올라왔다고?
싶을 정도로 아무리 내려가도 제자리 같다
다 내려왔을 무렵 계곡을 만났다.
제석봉으로 내려가지 않아서 유암폭포를 못 봤지만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조그만 계곡이 너무나 반가웠다.

곧바로 양말을 벗어 계곡물에 담갔는데 등산화 안에서 혹사당하던 내 발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콸콸콸 시원하게 쏟아지는 계곡물에 둥둥떠다니는 단풍잎이 보여주는 모습은 지리산에서 본 가장 가을스러운 장면이었다.
장장 12시간이 걸린 지리산 산행이 끝났다.
올라갈 땐 안내소가 닫혀있어 도장을 못 받아 내려올 때 찍을 수 있었다.
통천길에서 주차장까지도 꽤 거리가 있다는 걸 까먹었다. 올라갈 때는 간식도 먹고 시작이라는 설렘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

조금은 조급하게 서울로 올라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려고 걸었다.
하산 후에 먹는 막걸리도 영양 가득한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매점에서 매실차 한잔 들고 버스를 탔다.

버스 좌석에 기대자마자 내 몸에서 땀 냄새가 났는데
어느 정도냐면 군대에 입대한 둘째가 훈련소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이 택배로 집에 왔을 때 택배를 열자마자 풍기던 그 묶은 땀 냄새가 나한테 났다.

그리고 눈 감았다 뜨니 서울이었다. 마스크 속에서 침을 왕창 흘리면서 잤더랬다.
이렇게 am 3:40분 부터 pm 3:20분까지 지리산 천왕봉 당일 일출 산행을 다녀왔다.
이후 2박 3일동안 근육통으로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 북한산국립공원의 북한산
백운봉암문에서부터 백운대구간
길동과 우이동을 가로지르는
130번 버스를 타면 환승할
필요없이 곧장 북한산으로 갈수있다.

최저온도와 최고온도가 모두 영상인 날.
드디어 말로만 약속했던 북한산을 올랐다.
징담컨데 우이역 버스 종점에서
북한산 입구까지가 가장 힘들다.
그런데 북한산에 올때마다 산행 라이딩하시는 분들을 본다.
진짜 대단한 사람들.

이번에 알았는데 역에서 입구까지
택시 드랍서비스가 유~~명 하단다.

기본택시비가 아니고
인당 2천원으로 입구까지 한번에 간다는데
나는 이걸 요번에 알았다.

이제는 이 사실을 알게됐지만
그래도 택시는 안탈것같다.
이 구간을 걸어야 산행이 쉽다는걸 알다
비온 뒤, 강풍 예보로 산행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시야도 깨끗하고, 그 찹찹한 바람이 좋았다.

춥지는 않은데 무시무시한 소리로 몰아치는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다.
마른 낙엽들이 우수수 굴러 날아가는데
우후~ 하는 기분좋은 소리를 따라 질렀다.
미화된 북한산의 추억에 깜빡 잊었다.
백운대코스 진짜 좋은데 진짜 무섭다.
으아아아
무섭다는 소리를
저 안전봉 구간이 끝날때까지
연달아 외쳤다.

그런데도 풍경이 멋진건 어쩔수 없다.
가파른 경사에 안전봉을 잡고 오르는 사람들.
눈 높이와 같아진 산능성이.
깨끗한 시야로 산아래 마을까지 보이는 풍경.

이번에도 북한산의 추억은 미화될 것 같다.
백운대 정상 인증 팻말은 없지만!
나에게 정상은 여기다.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 하나 없고
편하게 앉아서 쉬기도하고 도시락도 먹을수 있는 정상.

한라산 백록담에서 진짜 라면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7월 1일 한여름의 날씨
분명 일출을 보고 성판악입구로 향했는데
해 쨍쨍하다가 정상에 다다를쯤 안개가 꼈다.
속눈썹에 이슬이 맺힐만큼 추워서
저절로 주머니에 손 넣고 산을 탔다.
손이 너무 시려서 어쩔수가 없었다.

영상의 날씨지만 정상에는 바람이 어마무시하게 불었다.

그 정상에서 육개장 라면 냄새릉 폴폴 풍기며
싸간 얇은 피만두로 점심을 먹는데,

흐흐흐
다른 등산객의 부러움이 담긴 소리를 들었다.

"아 다음엔 라면 3개치 챙겨온다."
"정상에서는 라면을 먹어야하네~"

그 마음 무슨마음인지 잘 알아서
라면맛이 두배로 좋았다.
나 이제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어른인가보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에 막걸리가 맛이 좋더라.

온 동네 등산객은 여기 다 모였는지
안쪽 좌석에 줄지어진 등산화들이 귀여웠다.
뜨끈한 두부전골집엔 웨이팅까지 생기더라.
잘 먹고서 종점에서 집에가는 130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하필 130번!

승객의 입장에서는 조기 출발 괜찮은데요.
  • 지하철 타고 가는 서울 산
도봉산역에서 내리면 펼쳐치는 동네시장의 클라스, 흡사 시골 5일장 같은 정이 넘치는 모습
무교이지만 산속의 절, 천축사에서 느끼는 어딘가 모르게 편안한 불교 분위기 그리고 천축사에서 바라보는 서울 도심의 풍경
쉴틈없이 경사진 도봉산에서 여기가 아니면 쉬어갈 포인트가 없다고 광고하는 평평하고 너른 마당바위에서 꼴딱 넘어갈것같은 숨을 돌리며 즐기는 도시락타임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서울
요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면 10개 중 8개는 완연한 가을 날씨에 대해 출퇴근 풍경, 창밖에서 방으로 들어오는 빛줄기, 노을 사진들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 날씨는 따뜻한 햇볕에 시원하면서도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마음 시리게 푸르르다.
그래서 날씨가 맑은 일요일엔 등산을 가기로 정했다.

어느 산으로 갈까 고민하다 갔던 곳을 또 갈까?
저번에 갔던 북한산, 아차산과 용마산을 떠올렸는데 직장동료분이 북한산보다는 도봉산이 예쁘다는 얘기를 해줬던 게 생각나 이번에는 도봉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도봉산역에 내리면 횡단보도에서부터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정말 모두가 등산하러 오신 분들이다.

역에서부터 산 입구까지 1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도봉산이 초행길이어도
등산배낭을 멘 사람들을 따라가면 무사히 국립공원 입구로 갈수 있다.

가는 길에는 등산용품점들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데
그곳은 서울이 아니라 시골장에 온 느낌을 준다.

김밥 한 줄도 2,000원이었는데 인삼튀김이 한 뿌리도 2,000원 이였다.
집 근처 시장에 있는 튀김집에서도 인삼튀김을 팔고 있었는데 한 뿌리에 10,000원이었다.
배낭도 없이 맨몸으로 간 산행이라 물 한 병만 손에 쥐고 입산했는데 다음 등산할 땐 배낭 꼭 챙기자고 다짐했다.

첫 등산이었던 해발 287m 아차산에 갈 땐 물은 당연하고 정상에서 먹을 김밥 한 줄도 포장해서 갔었다.
두 번째 해발 836m 북한산 백운대를 갈 땐 배낭에 물 한 병만 챙겼다가 손을 자유롭지만 목말라서 괴로웠고
그 다음으로 해발 348m인 아차산 ~ 용마산엔 맨손에 얼음물 한 병 사다 산에 올랐었다.

갈수록 배낭이 가벼워지더니 맨손으로 산에 오르다 가파른 경사길에서 언제나 후회하게 된다
?국립공원에서부터 최단거리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빠지지 않고 직진하는 코스인데
초반부에는 산길 따라 계곡물이 아주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근래에 비가 많이 와서 이렇게 콸콸 흐르는 건지, 원래 도봉산은 물줄기가 시원하게 흐르는 건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도봉산이 북한산보다 등산 난이도가 높은 것 같다.
북한산은 완만한 오르막과 급격한 오르막이 사이좋게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중간중간에 한 템포 쉬면서 가는데,
도봉산은 초반에는 완만하게 시작하다 중반부부터 정상까지 쉴 틈 없이
급격한 오르막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앞을 바라보는 고개의 각도도 따라 올라간다.

?산을 오르다 보면 정상으로 바로 갈지 아니면 천축사 절을 들렀다 갈지 갈림길이 나오는데
나는 이때 해우소를 이용하려 절을 갔다가 눈 높이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면서
급경사에 고생하고 있던 고개를 쉬어갈 수 있었다.
마당바위에서 신선대까지 약 0.8km 정도 거린데 체감상 훨씬 배로 느껴진다.

어마 무시한 경사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걷더라도 해발은 높아지지만 km는 생각만큼 줄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시선의 돌바위 길을 지나 나무 데크 길의 끝, 정상의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보여도
단숨에 오르고 싶어도 도저히 쉬지 않고 갈수 없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다리가 땡땡 무거워지면 올라왔던 길을 뒤돌아 보면서 숨을 고른다.
이쯤 높이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다 아름답게 보인다.
빽빽한 도심과 구불구불한 산등성이의 곡선, 파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의 그림자들도 모두 다 아름답다.
도봉산의 정상인 자운봉은 안전 문제로 오를 수 없어
그 맞은편인 신선대를 목표로 등산했는데 사실 좀 실망했다.
그곳은 너무나도 좁아서 신선대 팻말 앞에서 인증 사진조차도
가파른 바위에서 난간을 붙잡고 한 줄로 서서 기다렸다가 정상에서 쉬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그곳은 비매너가 판을 쳤다.
좁고 가파른 돌 바위에서 차례로 한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끄트머리에 막 도착한 등산객들이 소리쳤다.

"거 뒤에 있는 사람들 좀 생각해서 앞으로 당깁시다 "

정상에서 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과 풍경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내려오지 않았는데도
앞으로 이동하는 말을 반복하더니 결국엔 난간을 붙잡지도 않고 바위를 타고 올라 새치기를 하다
사람들과 부딪쳐서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산에서도 등산하는 사람과 하산하는 사람의 동선을 위해
우측통행을 해야 하는데 산 정상 바위에서 어르신 한 분이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가팔라 못 내려가신다고 올라가는 길로 역주행으로 내려오시다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상에서 먹을 간식으로 역 앞에서부터 옥수수가 담긴 검은 봉지를 달랑달랑하면서
등산했지만 정상을 찍고 마당 바위로 돌아와서 겨우 맛봤다.

허리춤에 감아둔 후드집업 모자에 넣어놓고 등산도 했지만 역시 짐이었다.

등산할 땐 양손이 자유롭게 배낭을 챙기는 게 안전에 좋은 것 같다.
옥수수를 살 때 입구 시장에서 망태기라도 살 걸 그랬다.
?도봉산에서 유일하게 풍경을 보면서 쉴 수 있는 곳이 마당 바위같다.
초반에는 나무 때문에 풍경이 보이지 않고 어느 정도 올라와서 길이 좁아서 쉬어갈 곳이 없더라.
북한산은 불고기와 더덕구이였는데, 하산하는 길에는 내려가서 무얼 먹을까 진지한 고민을 했다.

역시 등산은 하산 후에 먹는 먹거리가 진짜다.

역에서부터 입구까지의 장터를 구경하다 오면서 후보 몇 가지들을 정했는데
그중에 깔끔해 보이는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작은 식당 같았는데 들어가 보니 테라스까지 테이블이 있어 하천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도봉산은 전골 맛집인가 보다. 공깃밥을 더 먹고 싶었는데 전골이 푸짐해서 말았다.
도봉산 입구에서 21개의 국립공원이 소개된 스탬프 여권을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는데
첫 장이 북한산국립공원이다. 뒷장의 여러 산들 도장 깨는 스탬프 투어 버킷리스트로 정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페루에 여행을 갔을 때 69호수&파스토루리빙하와 마추픽추&와이나픽추 등산을 일정에 넣었는데
비행기 결항으로 69호수는 제외하고 다녀왔었다.

알고 봤더니 69호수와 파스토루리빙하는 페루의 어떤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때에 '국립공원이란 건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들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국립공원이 있는 줄 몰랐다.

북한산도 산이고 지리산도 산이고 설악산도 그냥 산이지 했는데
국립공원에 소속된 산이라는 걸 스탬프 여권을 보고 알았다.

우리나라 산들도 정말 예쁘구나.